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곤 사토시 (문단 편집) == 인간 관계 == 생전에 인성이 좋기로도 유명했다. 그의 작품의 작화가 뛰어난 것도 그와 작업하려고 하는 천재 애니메이터가 줄을 섰기 때문이다.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게 공동 창작이라 자존심 강한 크리에이터와 충돌하기도 하고 추구하는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어 싸우고 화해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곤 사토시는 오직 "그는 착하고 대단했다." 라는 미담만 나오는 희귀한 인물이다. 한동안 [[토에이 애니메이션]], [[스튜디오 지브리]]의 실력파 애니메이터들이 곤 사토시에게 몰려가서 두 회사가 곤욕을 치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. 주변인들이 그를 회상할 때 늘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고, [[히라사와 스스무]]가 병문안을 갔을 때 발작이 오자 미칠듯한 고통에 발악을 하면서도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할 정도였다. 칭찬을 잘 했다고 한다. 어떤 스태프가 일을 잘 해내면 반드시 "정말 잘 했다."라고 칭찬하고 "이런 것까지 파악하고 해냈구나. 당신은 굉장한 사람이다."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. 그래서 그와 일하면 보람이 느껴진다고. 그러면서도 문제점을 지적할 때는 정확하게 문제를 지적해서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. [[히구치 신지]]는 "콘 사토시가 살아있을 때는 그가 가장 사랑받았다. 아쉬운 사람을 잃었다. 그가 살아있을 때 [[카미야마 켄지]], [[하라 케이이치]], [[호소다 마모루]]에 나까지 네 명이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. 네 명이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가 콘 사토시가 없으면 실력있는 애니메이터들을 확보할 수 있어 내 작품도 퀄리티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거였다. 원래 만화가로 시작한 분이라 '만화의 나라로 돌아가 버려' 같은 말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. 콘 사토시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워낙 매력적이라 모두가 그의 일을 하고 싶어했다. 실력 좋은 애니메이터가 자기 일은 안 맡아주는 게 다들 고민이었다."라고 한 적이 있다.[* 곤 사토시가 죽은 뒤로 곤 사토시 밑에서 일하던 애니메이터들은 대부분 [[미야자키 하야오]]와 [[호소다 마모루]]가 데려갔다.] 주로 작업하던 애니메이터로는 [[안도 마사시]], [[하마스 히데키]], [[코니시 켄이치]], [[야마시타 타카아키]], [[이노우에 토시유키]], [[미하라 미치오]], [[혼다 타케시]], [[아라이 코이치]], [[오오츠카 신지]], [[하시모토 신지(애니메이터)|하시모토 신지]], [[이타즈 요시미]], [[하야마 준이치]], [[오키우라 히로유키]], [[모리타 히로유키]], [[에구치 히사시(애니메이터)|에구치 히사시]], [[미야자와 야스노리]], 스즈키 미치요(鈴木美千代)가 있다. 특히 하마스 히데키와 스즈키 미치요를 자신의 팔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좋아했다. [[오키우라 히로유키]]는 신인 시절부터 작업을 같이하면서 친해진 절친이라고 한다. 한편으로는 [[노인 Z]]와 [[죠죠의 기묘한 모험]] 때 같이 일한 [[키타쿠보 히로유키]] 말로는 그는 항상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으며 곤 사토시가 진짜 마음을 연 친구는 손에 꼽는다고 한다. 그래서 자신은 곤 사토시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한다. 암에 걸렸을 때도 마루야마 마사오 등 극히 일부의 지인 외에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. 제자로는 [[히라오 타카유키]], [[마츠오 코우]]가 있다. [[타치카와 유즈루]]는 본인이 제자라고 자칭을 안 하지만 곤 사토시를 존경하며, 친분도 있었다고 한다. 이렇게 애니메이터와 친했으나 연출면에서는 완벽 주의라 그와 같이 일한 연출가나 [[제작진행]]하고는 그렇게 관계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. [[오시이 마모루]]는 곤 사토시는 애니메이터와 관계가 좋았지만 연출가와 제작진행을 갈궈서 작품 질을 올리는 감독이었다고 하기도 했다. 오시이가 아는 선에선 곤 사토시는 애니메이터도 갈궜었다고 하며 그는 알려진 것처럼 완전한 군자는 아니었다고 한다. 오시이는 곤 사토시 작품의 뛰어난 퀄리티는 누군가를 갈구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. 다만 성격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고 완벽주의라 그러는 것이고 작품이 뛰어나서 다들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. 이런 성향 탓인지 당시 젊은 신인 연출가들은 곤 사토시를 따르거나 하지는 않았으나, 드물게 20살의 막 입사한 청년 [[히라오 타카유키]]가 자신의 팬이라며, 따르자 제작진행으로 직접 고용해서 이것 저것 알려주고,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대해 직접 알려주고, 연출로도 기용해주면서 알려줬다고 한다. 히라오가 매드하우스를 퇴사 할 때도, 퇴사한 후에도 꾸준히 찾아와서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고 한다. 퇴사 후 까지도 자신을 찾아오는 20대 연출가는 히라오 타카유키가 유일했다고 한다. 스승이 하는 걸 보고 배운 건지 히라오도 스태프를 갈궜다는 후문이 꽤 있는 감독이다. 마츠오 코우에 대해서는 자신이 들어갔던 스튜디오에서 어떤 작화감독이 [[F1 기관단총|F1]] 모형을 가져와 책상 위에 두었는데, 그걸 마츠오가 발견하고 "누군가 F1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?"라고 물었던 게 인상에 남았다고 한다. 그 때부터 마츠오를 이성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 때부터 인연을 트고 죽을 때까지 함께 활동했다. 음악으로는 [[히라사와 스스무]]의 팬으로, [[천년여우]] 이후 협업하기 시작해 여러 작품에서 그와 찰떡궁합을 자랑하기도 했다. 그에게 영화음악을 맡기고 결과물이 나오면, 음악이 너무 맘에 들어서 감독이라는 것을 잊고 팬모드로 돌입해서 굉장하다는 소리만 연발했다고 한다.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했는지 [[퍼펙트 블루]] 당시에도 [[앰비언트]] 음악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.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고 감독으로 계속 지원해준 [[마루야마 마사오(1941)|마루야마 마사오]]는 은인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했다. 마루야마 마사오는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꾸준하게 그의 작품의 제작비를 마련해 주고 지원했다. 콘 사토시의 사후 제작된 다큐 영화 《콘 사토시: 꿈속의 마법사(Satoshi Kon, l'illusionniste)》의 인터뷰에서는 '콘 사토시의 작품은 일부의 애니메이션팬들한테는 '색다른(変わった)'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호평을 받았지만, 일반 대중한테는 대부분의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해서 제작비 회수를 할 수 없었다'고 말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